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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제조업 AI 도입 순서: DX를 먼저 끝내야 할까?

작성자
듀오랩스 대표·16분 읽기

공장을 가진 중소·중견 제조기업 16만여 곳 가운데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곳은 19.5%입니다. 회사가 작을수록 이 비율은 더 떨어집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25년 4월에 낸 제1차 스마트제조혁신 실태조사 결과입니다.

중견기업 중기업 소기업 소상공인 전체 중견기업 85.7% 중기업 54.2% 소기업 28.5% 소상공인 8.7% 전체 19.5% 85.7% 54.2% 28.5% 8.7% 19.5%

그림: 기업 규모별 스마트공장 도입률. 공장을 보유한 중소·중견 제조기업 16만 3,273개사 기준입니다.

도입한 곳 안을 들여다보면 더 낮아집니다.

실태조사 항목 비율 기준
스마트공장 도입 19.5% 공장 보유 기업 전체
그중 기초단계 수준 75.5% 도입 기업
그중 공장 일부에만 도입 99.8% 도입 기업
제조AI 도입 0.1% 공장 보유 기업 전체
데이터·AI 전담 부서나 인력 보유 0.8% 공장 보유 기업 전체

이 숫자를 보면 순서는 정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디지털 전환(DX)도 아직인데 AI는 그다음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순서가 절반만 맞다고 봅니다. 어떤 AI를 말하느냐에 따라 순서가 뒤집히기 때문입니다.

DX를 먼저 하라는 조언의 근거

흔히 AI를 DX의 다음 단계로 설명합니다. 종이와 엑셀에 흩어진 기록을 시스템에 모으고,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그 위에 AI를 올린다는 그림입니다. 계단처럼 아래 칸을 밟아야 위 칸에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AI가 곧 "데이터로 학습해서 예측하는 모델"이던 시절에 만들어졌습니다. 불량을 예측하려면 과거 불량 기록이 정리돼 있어야 하고, 수요를 예측하려면 몇 년 치 주문 데이터가 한 표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AI에게는 데이터가 재료이고, 재료 없이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 시절의 조언으로는 정확했습니다.

같은 'AI'라는 말에 묶인 두 종류

지금 "AI 도입"이라고 할 때는 성격이 다른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예측·최적화 AI 읽고 쓰는 AI (생성형)
하는 일 불량 예측, 설비 고장 예측, 수요 예측 문서·사진·메시지를 읽고 정리, 초안 작성
필요한 입력 정리된 과거 데이터 (센서, MES, ERP)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료
DX와의 관계 DX가 끝나야 시작 가능 DX를 대신 해 줄 수 있음

왼쪽은 계단 그림이 그대로 맞습니다. 오른쪽은 다릅니다. 종이 작업일보를 찍은 사진, 카카오톡으로 들어온 발주 메시지, 담당자마다 양식이 다른 엑셀을 그대로 읽고 정해진 표로 옮겨 적는 일을 합니다. 데이터를 재료로 쓰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만드는 쪽에 서 있습니다.

DX가 멈추는 곳은 대개 입력 단계

디지털 전환이 실패하는 비율로 "70%"가 자주 인용됩니다. 그런데 출처를 따라가 보면 숫자가 제각각입니다. AMCIS 2024 논문은 맥킨지를 인용해 70%라고 하고, 다른 문헌 검토들은 66%에서 90%까지 인용합니다. 저는 정확한 비율보다 그 논문이 지목한 원인에 더 동의합니다. 기술을 들이는 데만 집중하고, 그 기술을 쓸 조직과 사람을 놓친다는 것입니다.

중소 제조 현장에서 그 "사람" 문제는 대부분 입력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시스템을 들여도 현장 반장이 작업 끝나고 화면에 숫자를 다시 쳐 넣어야 한다면, 바쁜 날부터 입력이 빠지고 결국 종이로 돌아갑니다. 실태조사에서 도입 기업의 4분의 3이 기초단계에 머문다는 것도 저는 이 맥락으로 읽습니다. 시스템은 있는데 데이터가 들어오지 않는 상태입니다.

입력을 AI가 맡으면 바뀌는 순서

두 순서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한 칸에서 납니다.

흔히 말하는 순서 AI를 먼저 쓰는 순서 시스템 도입 직원이 화면에 다시 입력 바쁜 날부터 빠지는 단계 데이터 쌓임 예측 AI 종이·카톡·엑셀 그대로 AI가 읽어 정리 사람이 확인·승인 데이터 쌓임 예측 AI

읽고 쓰는 AI가 입력을 맡으면 현장 사람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반장은 지금처럼 종이에 적고 사진만 찍습니다. 영업 담당은 지금처럼 카톡으로 발주를 받고, 그 메시지가 주문서 양식으로 정리돼 올라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AI가 옮겨 적은 내용을 확인하고 승인하는 것으로 줄어듭니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면 그동안 없던 정형 데이터가 쌓여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예측 AI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순서가 "DX 다음에 AI"에서 "AI로 DX, 그다음에 다시 AI"로 바뀌는 것입니다.

승인 단계를 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읽고 쓰는 AI는 틀립니다. 흐릿한 사진의 숫자를 잘못 읽을 수도 있고, 메시지의 수량 단위를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마지막에 확인하는 구조는 이 오류를 잡는 장치이면서, 현장이 AI를 믿기 시작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DX가 먼저인 경우

설비 예지보전처럼 기계 자체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필요한 일은 이 방식으로 앞당길 수 없습니다. 진동, 온도, 가동 시간은 사람이 종이에 적어 두지 않은 데이터이고, 센서를 달고 수집 시스템을 갖추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AI가 없는 기록을 읽어 낼 수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별로 나눠 보면 이렇습니다.

하고 싶은 일 맡을 AI 먼저 갖춰야 할 것
작업일보·검사기록 정리 읽고 쓰는 AI 없음. 지금 서류 그대로
카톡·메일 발주를 주문서로 읽고 쓰는 AI 옮겨 적을 주문서 양식 하나
불량 원인 분석·예측 예측 AI 정리된 검사·공정 기록
수요 예측 예측 AI 한 표에 모인 과거 주문 데이터
설비 고장 예측 예측 AI 설비 센서와 수집 시스템
공정 조건 자동 조정 예측·제어 AI 설비와 연결된 제어 시스템

위의 두 줄은 내일 시작할 수 있고, 가운데 두 줄은 위의 두 줄이 쌓아 준 데이터로 갈 수 있습니다. 아래 두 줄은 하드웨어 투자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저는 "AI 도입"을 검토할 때 원하는 결과가 문서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지, 기계 안에서 일어나는지부터 나눠 보길 권합니다.

첫 공정을 고르는 기준

처음부터 공장 전체를 바꾸려 하면 실태조사의 99.8% "부분 도입"과 같은 결과로 끝나기 쉽습니다. 저라면 오히려 처음부터 한 군데만 고르겠습니다.

기준 스스로 물어볼 것
반복되는 서류 매일 사람이 같은 양식을 옮겨 적고 있는가
틀려도 잡히는 일 AI가 잘못 읽으면 누가, 언제 알아채는가
잴 수 있는 일 지금 이 일에 하루 몇 분이 드는지 재 두었는가

세 번째를 빠뜨리기 쉽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지금 그 일에 드는 시간을 재 두지 않으면 나중에 효과를 말할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 AI 도입이 "시범 운영은 끝났고 성과를 보여야 하는 시기"라고 이야기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지원사업을 볼 때 확인할 것

정부 지원도 방향이 AI 쪽으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2026년 스마트 제조혁신 지원사업 통합공고는 2025년 10월 31일에 나왔고, AI 기반 지능형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이 들어 있습니다. 세부 사업 중에는 제조AI특화 스마트공장처럼 AI를 이름에 단 트랙도 있습니다.

다만 사업 이름과 지원 조건, 자부담 비율은 해마다 바뀝니다. 지역별로 따로 나오는 공고도 있고 마감도 각각입니다. 이 글에 적은 것은 공고가 나왔다는 사실까지이고, 우리 회사가 대상인지는 그해 공고 원문과 기업마당에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부분

읽고 쓰는 AI가 현장 손글씨를 얼마나 정확히 읽는지는 제가 단정할 수 없습니다. 양식, 글씨, 사진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이건 그 공장의 실제 서류로 시험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공정을 고를 때 "틀려도 사람이 잡을 수 있는 일"을 기준에 넣었습니다.

계단 그림이 틀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측 AI로 가려면 결국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점은 그대로입니다. 바뀐 것은 그 데이터를 누가 넣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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