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멤버: 여러 직군이 한 사람으로 통합되는 이유
IT 프로젝트 실무서를 펼치면 "프로젝트 멤버" 항목에는 늘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기획자, 디자이너, 퍼블리셔, 개발자,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마케터, 콘텐츠 에디터, MD, 인사·재무, CS까지. 그리고 이런 조언이 따라옵니다. "해당 산업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손발을 오랫동안 맞춰본 팀일수록 보다 나은 결과물을 뽑아낼 확률이 높습니다."
손발을 맞추는 데 시간이 든다는 전제
이 조언이 맞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기획자가 정한 요구사항이 디자이너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뉘앙스가 빠지고, 디자이너의 의도가 퍼블리셔를 거쳐 개발자에게 가는 동안 또 한 번 깎입니다. 이 손실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 오래 같이 일해 서로의 화법과 판단 기준을 익히는 것, 즉 손발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팀 빌딩과 사수-부사수 문화, 오래된 협업사를 선호하는 관행은 전부 이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이 비용에는 이름과 공식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공학의 고전 『맨먼스 미신』에서 프레드 브룩스가 정리한 통신 비용 공식, n(n-1)/2입니다. 인원이 늘수록 서로 맞춰야 할 소통 경로가 인원수의 제곱에 가깝게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개발자 50명이면 소통 경로가 1,225개까지 불어납니다(위키백과). "손발을 맞추는" 일이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왜 사람을 더 투입해도 오히려 늦어지는지가 이 공식 하나로 설명됩니다.
저는 이 전제가 이제 절반만 맞다고 봅니다. 손발을 맞추는 비용이 사라지는 더 빠른 길이 생겼습니다. 여러 사람 사이의 손실을 줄이는 대신, 애초에 여러 사람으로 나누지 않는 길입니다. 브룩스의 공식대로라면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n을 1로 만들면 통신 비용은 정확히 0이 됩니다.
이미 실측으로 확인한 경계
SA 기획을 다룬 글에서 다룬 인쇄기 롤러 프로젝트가 이 경계를 보여줍니다. 분석과 구현을 한 사람이 맡자, 설계서와 코드 사이의 간극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사진에서 옮긴 규격이 맞는지 코드가 검사하고, 제안서에 적은 방식을 이미 돌아가는 화면으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이건 기획자와 개발자 두 역할이 통합됐을 때 벌어진 일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이 통합을 기획·디자인·퍼블리싱·개발까지 훨씬 넓은 범위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듀오랩스가 이미 통합해 둔 것들
듀오랩스의 소개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상담한 사람이 기획·개발·출시·운영까지 직접 맡습니다." 이 문장은 마케팅 카피가 아니라 조직도입니다. 이 실무서 기준으로 보면 기획자, 개발자, 그리고 운영 인력까지 세 칸이 한 사람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디자인은 DEUX(자체 디자인 시스템)와 PAGE(패턴 킷)라는 이미 검증된 자산을 가져다 쓰고, 퍼블리싱은 그 자산이 이미 코드 형태로 처리합니다. 실무서가 나열한 칸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칸들을 채우던 일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업에서 한 사람과 도구 사이의 작업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통합이 만드는 세 가지 효율
핸드오프가 사라지면 세 가지가 동시에 바뀝니다. 첫째, 전달 손실이 없습니다. 기획자가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며 달라지는 일 자체가 없습니다. 둘째, 조율 시간이 없습니다. 다섯 명이 있으면 다섯 명의 일정을 맞추는 회의가 필요하지만, 한 사람의 판단은 회의 없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셋째, 책임의 소재가 명확합니다. "이건 디자인 문제인가 개발 문제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셋 중에서 조율 시간의 소멸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손해를 줄이는 협업 기술은 계속 발전해 왔지만, 조율에 드는 시간 자체를 없애는 방법은 사람 수를 줄이는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AI가 부순 것은 역할이 아니라 실행이다
이 통합이 가능해진 이유를 저는 "AI가 기획자나 개발자를 대신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AI가 대신하는 것은 역할이 아니라 그 역할 안의 실행 부분입니다. 디자이너의 역할에서 손이 하던 작업(배치, 색상 조합, 아이콘 제작)은 도구가 가져가고, 판단(이 화면에서 사용자가 무엇을 먼저 봐야 하는가)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개발자의 역할에서 타이핑과 문법 오류 찾기는 도구가 가져가고, 이 로직이 실제 업무 흐름과 맞는지 판단하는 몫은 사람에게 남습니다.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역할의 개수는 그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판단"의 양으로 정해집니다. 실행이 줄어들면 같은 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판단의 개수가 늘고, 그만큼 한 사람이 감당하는 역할의 폭이 넓어집니다.
네덜란드의 개발자 피터 레벨스가 이 실무서의 아홉 칸을 실제로 혼자 채우는 사람입니다. 기획, 디자인, 개발, 마케팅을 전부 직접 하고 인터뷰도 직접 응하며, 서버는 헤츠너의 서버 한 대를 씁니다. 그가 만든 포토AI·노마드리스트·리모트오크·인테리어AI 네 개 제품의 매출을 2014년부터 지금까지 공개 대시보드에 실시간으로 공개해 왔고, 최근 포트폴리오 전체 연매출은 약 300만 달러(약 42억원) 수준으로 보도됩니다(FastSaaS). 팀을 꾸리지 않고 직원 없이 이 규모를 낸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이런 개인의 사례가 통계로도 나타납니다. 2019년 23.7%였던 1인 창업 비중이 2025년 상반기 36.3%까지 올랐고, 이 상승의 배경으로 꼽히는 것이 정확히 AI가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작업량을 늘렸다는 점입니다(Carta 데이터를 다룬 기사).
이 파괴력을 가장 직설적으로 표현한 사람이 오픈AI의 샘 올트먼입니다. 그는 테크 업계 CEO들과의 모임에서 "1인 기업이 나오는 첫해가 언제일지"를 두고 내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AI가 없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지만, 이제는 일어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TechCrunch).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을 한 사람이 만드는 일이 농담이 아니라 시점의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통합이 다시 풀리는 지점
이 통합이 모든 프로젝트에 무한히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저는 봅니다. SI 모듈화를 다룬 글에서 짚었듯, 조직이 커지면 이 역할은 다시 나뉩니다. 판단의 총량이 한 사람의 하루를 넘어서는 순간, 즉 동시에 처리해야 할 프로젝트가 여러 개이거나 각 판단이 요구하는 전문성의 깊이가 너무 다르면 다시 사람을 나눠야 합니다. 이 실무서가 나열한 아홉 개 역할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역할들을 나누는 기준이 "산업 경험"에서 "한 사람이 감당 가능한 판단의 총량"으로 바뀐다는 뜻입니다.
손발을 오랫동안 맞춘 팀이 좋은 결과물을 낸다는 조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이제 그 손발을 맞추는 작업 자체를 없애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고, 저는 이 선택지가 작은 프로젝트일수록 이미 더 유리한 선택지가 됐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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