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듀오랩스
기획

웹사이트 기획 프로세스 4단계: 어디까지가 분석이고 어디부터 결정인가

작성자
듀오랩스 대표·7분 읽기

웹사이트 기획 프로세스를 그린 표를 보다가 걸리는 칸이 하나 있었습니다. Step 3 「사이트 기획 및 설계」 안에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이 들어 있습니다. 웹사이트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손익분기점을 계산한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웹 기획 프로세스는 기능 목록과 화면 설계까지 다루고 멈춥니다. 이 표는 같은 단계에 매출계획과 투자계획을 같이 넣었습니다. 이 배치 하나가 프로세스 전체의 성격을 바꿉니다.

네 단계를 가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산출물의 성격

현황 분석, 포지셔닝 전략, 사이트 기획 및 설계, 제작 및 개발. 네 단계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놓여 있으니 일정표처럼 읽기 쉽습니다. 그런데 순서보다 중요한 것은 각 단계가 내놓는 산출물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단계 하는 일 산출물의 성격
Step 1 현황 분석 시장·경쟁사·자사·고객을 조사 밖에서 가져온 것
Step 2 포지셔닝 전략 고객을 나누고 고를 대상을 정함 처음 등장하는 버린 것
Step 3 기획 및 설계 콘셉트·수익모델·일정·손익을 확정 우리가 정한 것
Step 4 제작 및 개발 콘텐츠·IA·화면·구현·테스트 실제로 만든 것

앞의 둘은 발견이고 셋째는 결정입니다. 이 경계를 흐리면 "분석을 충분히 하면 답이 나온다"는 기대가 생깁니다.

분석이 결정을 대신해 주지 못하는 구조

시장 규모를 조사하고 경쟁사를 훑고 SWOT을 채우고 고객 니즈를 정리해도, 그 결과가 "그래서 우리는 이걸 만든다"로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분석은 선택지를 좁힐 뿐이고, 좁혀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사람이 따로 해야 합니다.

이게 추상적인 걱정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테리 힐과 로이 웨스트브룩이 1997년 『Long Range Planning』에 실은 논문은 20여 개 기업의 SWOT 분석 사례를 검토했는데, 공통점이 평균 40개가 넘는 항목을 나열하고 우선순위도 검증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발견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 분석 결과를 이후 전략 수립 단계에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Hill & Westbrook, 1997).

분석 단계가 두꺼운 기획서가 반드시 좋은 기획서가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Step 1의 산출물이 Step 3으로 넘어가는지가 실제 기준입니다.

포지셔닝 단계에서 처음 등장하는 포기

Step 2에 고객 세그먼트, 핵심고객 선정, 사이트 포지셔닝 셋이 들어 있습니다. 세 칸 모두 같은 동작을 다르게 부른 것입니다. 나누고, 그중 하나를 고르고, 나머지를 버립니다.

포지셔닝을 "우리 사이트의 특징을 정하는 일"로 이해하면 이 단계가 무의미해집니다. 특징은 아무리 늘려도 서로 충돌하지 않지만, 포지셔닝은 늘릴수록 흐려집니다. 30대 직장인과 60대 자영업자를 동시에 핵심 고객으로 두면 화면 하나를 설계할 때마다 어느 쪽 기준을 따를지 매번 다시 싸워야 합니다.

저는 이 단계의 산출물을 "고른 것"이 아니라 "버린 것"으로 적어 두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고른 것만 적힌 문서는 나중에 범위가 늘어날 때 막아 주지 못합니다.

나머지와 다르게 세로로 뻗어 있는 Step 3

표를 보면 Step 1, 2, 4는 칸이 평평하게 나열돼 있는데 Step 3만 세로로 길고 안에 서비스 전략, 실행계획, 매출분석이라는 덩어리 셋이 따로 묶여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 이 단계를 나머지와 다르게 취급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성격이 다릅니다. Step 1과 2는 조사와 선택이고 Step 4는 제작인데, Step 3만 세 종류의 결정을 한꺼번에 담고 있습니다. 무엇을 줄 것인가(서비스 전략),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실행계획), 얼마가 들고 얼마를 벌 것인가(매출분석). 이 셋은 서로 제약합니다. 수익모델이 광고라면 체류 시간을 늘리는 화면 구조가 필요하고, 그 화면을 만들 인력과 기간이 실행계획에 잡히고, 그 비용이 손익분기점을 다시 밀어 올립니다.

사이트 기획 안에 손익분기점이 들어간 배치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면, 매출계획·투자계획·손익계획이 Step 3에 들어 있는 것이 이 프로세스의 가장 큰 주장입니다.

이 배치는 "사이트를 다 만들고 나서 수익을 고민한다"를 막습니다. 만들기 전에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면 기능 목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손익분기까지 18개월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오면, 18개월 치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는 회사는 기능을 줄이거나 출시를 나누거나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려야 합니다. 같은 계산을 오픈 이후에 하면 이미 쓴 돈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만 이 계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출시 전 손익 추정은 대부분 틀립니다. 그래도 계산하는 이유는 숫자를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가정이 깨지면 사업이 성립하지 않는지를 미리 알아 두기 위해서라고 저는 봅니다. 월 방문자가 계획의 절반이어도 버티는지, 객단가가 30% 낮아도 버티는지를 알고 시작하는 것과 모르고 시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제작 단계가 기획을 되돌려 보내는 경로

Step 4는 콘텐츠 제작, IA 설계, 화면 설계, 디자인, 구현, 테스트, 오픈 순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화살표는 한 방향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단계에서 앞 단계로 돌아가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IA 설계가 대표적입니다. 사이트맵을 실제 정보 구조로 옮기다 보면 Step 3에서 정한 콘셉트가 화면에서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나옵니다. 화면 설계에서는 정상 흐름만 그려 둔 기획이 예외 상황에서 막힙니다. 결제가 중간에 끊기면 어디로 돌아가는지, 권한이 없는 사용자가 이 링크를 열면 무엇을 보는지 같은 것들입니다.

이건 기획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추상 수준이 다른 문서 사이에서 당연히 생기는 일입니다. 그림이 폭포수처럼 그려져 있다고 해서 되돌아가는 것을 실패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Step 4에서 한 번도 되돌아가지 않았다면 Step 3의 결정이 화면까지 내려갈 만큼 구체적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표에 없는 다섯 번째 단계

표는 「사이트 오픈(Launching)」에서 끝납니다. 그 뒤가 없습니다.

외주 프로젝트에서는 이 지점이 가장 중요한 경계입니다. 오픈은 개발의 끝이지만 서비스의 시작이고, 만든 사람과 운영할 사람이 다른 경우 여기서 지식이 끊깁니다. 운영 인수인계, 장애 대응 절차, 콘텐츠를 누가 어떤 주기로 갱신할 것인가 같은 항목은 이 표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획 프로세스를 그린 표라서 빠진 것이 아닙니다. 운영 비용과 인수인계 방식은 Step 3의 손익계획에 반영돼야 하는 값입니다. 오픈 이후를 안 그린 표로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면 그 계산에서 운영비가 빠집니다. 넘기는 문제를 문서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푸는 쪽이 낫다는 이야기는 PDF 매뉴얼을 다룬 글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표 하나를 따라가며 정리했지만, 실제로 쓸 때 기억할 것은 네 단계의 이름이 아니라 경계 두 개입니다. 발견이 끝나고 결정이 시작되는 지점, 그리고 만드는 일이 끝나고 운영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앞의 경계를 흐리면 분석만 두꺼운 기획서가 나오고, 뒤의 경계를 안 그리면 오픈 직후에 비용이 튀어나옵니다.

이 게시글 공유하기

마지막 수정:

공유하실 때는 출처(Duolabs)와 원문 주소를 표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