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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사업) 기획: 통찰력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의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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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랩스 대표·9분 읽기

제조업체를 상대로 업무 시스템 제안서를 쓰다 보면 같은 지점에서 막힙니다. "이카운트보다 나은 ERP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장을 쓰는 순간 이미 진 싸움이 됩니다. 회계, 세무, 급여, 4대보험, 전자세금계산서는 법과 제도가 정한 표준이고, 이카운트는 이걸 월 4만원에 처리합니다. 수천만원을 들여 같은 기능을 다시 짜는 제안은 견적서를 보는 순간 끝납니다.

표준을 다시 만드는 싸움에서 지는 이유

기성 솔루션 시장은 생각보다 촘촘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이카운트나 경리나라 같은 클라우드 ERP는 회계·재고·판매·급여를 다루고, 위하고는 스스로 "비즈니스 플랫폼"이라 부르며 여기에 전자결재·협업·메신저를 얹습니다. SAP나 더존 iCUBE 같은 대기업 ERP는 전사 범위를 봅니다.

범주 대표 제품 다루는 범위
클라우드 ERP 이카운트, 경리나라 회계·재고·판매·급여
업무 플랫폼 위하고 ERP + 전자결재·협업·메신저·세금계산서
대기업 ERP SAP, 오라클, 더존 iCUBE 전사 시스템

이 표에서 봐야 할 것은 제품 이름이 아니라 범위입니다. 표준이 이미 이 범위를 월 몇만원에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같은 범위를 다시 만드는 모든 제안을 시작 전에 무너뜨립니다.

표준이 손대지 않는 두 구간

실제 기회는 표준의 안이 아니라 경계에 있습니다. 첫 번째 경계는 ERP 앞단입니다. 거래처 발주가 카톡, 문자, 전화, 엑셀, PDF로 제각각 들어오고 담당자가 그걸 읽어 품목명과 수량을 맞춘 뒤 ERP에 다시 입력합니다. 재고가 꼬이는 원인은 ERP가 아니라 이 입구에 있어서, 이카운트를 위하고로 바꿔도 문제는 그대로 남습니다(스택큐브).

두 번째 경계는 ERP 아래, 생산 현장입니다. ERP는 일·주·월 주기로 돌고 현장은 실시간이라 그 사이가 비어 있습니다. 작업일보, 작업지시 추적, 비가동 기록, 교대 인수인계가 종이와 화이트보드와 엑셀에 남습니다. 풀 MES는 중소 제조업에 비용도 기간도 과합니다. 기존 ERP는 그대로 두고 태블릿으로 현장 입력만 받아 집계하는 정도가 현실적인 대안입니다(Jodoo).

SAP 같은 대기업 ERP에서는 경계가 다시 그어진다

여기서 다룬 이카운트와 위하고는 중소 제조업체가 월 몇만원에 쓰는 제품입니다. SAP나 오라클, 영림원 K-System 같은 대기업 ERP는 셈법 자체가 다릅니다. 이 제품들은 도입 자체가 별도의 SI 프로젝트이고, 라이선스보다 컨설팅과 커스터마이징 비용이 더 큰 경우가 흔합니다. 표준 기능을 그 회사의 조직도와 결재 라인에 맞춰 다시 설정하는 작업, 흔히 말하는 파라미터 설정과 애드온 개발이 프로젝트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대기업 고객 앞에서는 "표준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이 글의 원칙이 뒤집힙니다. 표준 자체를 그 회사에 맞게 다시 짜는 일이 이미 하나의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부서의 승인을 거쳐 예산이 확정되고, 도입 기간도 수개월에서 1년 넘게 걸리는 경우가 흔한 이유입니다.

저는 이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 제품 이름이 아니라 고객의 조직 규모라고 봅니다. 담당 부서가 따로 있고 예산이 분기 단위로 잡히는 조직이라면 표준을 건드리는 제안도 통합니다. 담당자 한 명이 다른 업무와 겸해서 ERP를 보는 조직이라면, 이 글에서 다룬 "표준을 건드리지 말고 경계에 붙어라"는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유통업이나 서비스업에서도 같은 경계가 있을까

이 글은 제조업 사례로 썼지만, 원리는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고 저는 봅니다. 유통업에도 재고관리 표준(카페24, 아임웹 같은 커머스 플랫폼)이 있고, 그 표준이 처리하지 못하는 앞뒤 경계, 예를 들어 여러 채널의 주문을 하나로 모으는 지점이나 반품 처리 뒤의 정산이 남습니다. 서비스업도 예약·결제 표준 솔루션은 흔하지만, 예약 전 상담이나 노쇼 처리 같은 예외는 표준 밖에 남습니다.

다만 업종마다 표준이 이미 이긴 범위의 크기가 다릅니다. 이 크기를 가늠하는 데는 업종별 표준 제품을 직접 써 보거나 그 업종 담당자를 인터뷰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쓰지 않기로 한 숫자 하나

리서치 중에 이런 문장을 여러 번 마주쳤습니다.

제조업체 10곳 중 7곳이 핵심 데이터를 수기 또는 엑셀로 입력한다

숫자 자체는 이 글의 논지에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그런데 출처를 따라가면 전부 솔루션 업체의 자사 블로그로 끝나고, 원 조사가 어디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쓰지 않습니다. 통찰력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능력이라면,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스스로 걸러내는 것도 같은 능력의 일부입니다. 논지에 맞는 숫자라는 이유로 출처를 안 따지면, 그 판단은 통찰이 아니라 확증편향입니다.

출처를 확인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그 숫자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 전부가 솔루션 업체의 블로그나 광고성 콘텐츠뿐인지, 아니면 그중 하나라도 정부 통계나 학술 조사, 업계 협회 자료로 이어지는지를 봅니다. 이번 숫자는 뒤쪽으로 이어지는 링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숫자 없이도 이 글의 논지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글이 기대는 근거는 설문 통계가 아니라 이카운트의 API 문서, 요금 페이지, 위하고의 요금 비교처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1차 자료입니다. 확인되지 않는 숫자를 빼도 논지가 그대로 서 있다면, 애초에 그 숫자는 근거가 아니라 장식이었다는 뜻입니다.

주니어가 긋지 못하는 경계

현장에서는 이런 말도 자주 돕니다.

이카운트는 API가 없어서 커스터마이징이 안 됩니다

틀린 말입니다. 이카운트 Open API는 거래처·품목 등록, 견적·수주·판매 입력, 발주 조회, 생산 작업지시, 매입매출계산서, 근태, 온라인몰 주문, 재고현황까지 덮고 추가 요금도 없습니다. 이 말을 모르고 영업하면 담당자 앞에서 바로 반박당합니다.

문제는 API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원하는 화면이 그 목록 안에 있느냐입니다. 목록에 없으면 거기서 끝나고, 실무에서는 API와 엑셀 업로드와 웹 스크래핑을 섞어 쓰는 우회가 흔합니다. 이 경계, 즉 표준이 이미 이긴 영역과 아직 비어 있는 영역을 가르는 선은 매뉴얼 한 장으로 옮겨지지 않는다고 저는 봅니다. 여러 업종에서 여러 기성 솔루션에 부딪혀 본 사람만 이 선을 즉시 그을 수 있습니다. 이 판단을 주니어에게 맡기면 두 방향으로 틀립니다. 표준이 이미 잘 처리하는 영역에 새 기능을 제안하거나, 진짜 비어 있는 발주 입구와 생산 현장을 그냥 지나칩니다.

투자 대비 효용이 갈리는 지점

같은 논리는 가격에도 적용됩니다. 이카운트는 월 4만원(연 선납 44만원, 가입비 20만원 1회)에 사용자 수가 무제한이고, 위하고는 Club 월 2만원 또는 Pro 월 3만원에 사람이 늘 때마다 3천원 또는 6천원이 붙습니다.

기본 요금 사람이 늘면
이카운트 월 4만원(연 선납 44만원), 가입비 20만원 사용자 수 무제한
위하고 Club 월 2만원 / Pro 월 3만원 사용자당 3천원 / 6천원

"현장 인력까지 계정을 주면 비싸진다"는 논거는 위하고에는 맞고 이카운트에는 틀립니다. 이 하나의 문장이 어느 고객에게는 통하고 어느 고객에게는 바로 반박당한다는 사실이, 투자 대비 효용을 계산하기 전에 어느 표준을 상대하는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투입이 낮고 효용이 높으려면 표준을 대체하지 말고 표준의 경계에 정확히 붙어야 합니다. 발주 접수 페이지, 카카오 채널 연동, 태블릿 현장 입력처럼 ERP 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앞뒤만 잇는 형태입니다. 반대로 표준이 이미 처리하는 범위를 다시 만드는 제안은 투입이 크고 승산은 없습니다.

이 판단을 제안서 맨 앞에 놓아야 하는 이유

이 경계 판단은 제안서의 실행 계획이 아니라 문제 정의 부분에 와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실행 계획 뒤에 배치하면 예산과 범위가 이미 "새 시스템을 만든다"는 전제로 굳어진 다음이라, 뒤늦게 범위를 줄이자는 이야기는 축소 제안으로 읽힙니다.

반대로 문제 정의에서부터 "이 부분은 이미 표준이 잘 처리하고 있고, 우리가 손댈 곳은 여기다"라고 짚으면, 뒤에 나오는 좁은 범위의 제안이 축소가 아니라 정확한 진단의 결과로 읽힙니다. 담당자 입장에서도 이미 잘 쓰고 있는 기능을 갈아엎자는 제안보다, 지금 불편한 지점만 정확히 짚어주는 제안을 승인하기가 쉽습니다.

같은 내용을 제안서 어디에 두느냐가 읽는 사람에게 완전히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저는 이 배치 하나가 협상의 출발점을 바꾼다고 봅니다. 표준을 대체하겠다는 제안은 이카운트나 위하고의 연간 비용과 비교당하고, 경계를 채우겠다는 제안은 비교 대상이 없어 협상이 가격이 아니라 범위를 두고 벌어집니다.

위하고 쪽 Open API 공개 여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의 논리를 위하고 고객에게 그대로 적용하기 전에 그 확인부터 해야 합니다. 확인하지 않은 채로 같은 문장을 옮겨 쓰면, 이 글이 걷어낸 출처 불명의 숫자와 다를 바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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