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본질: 돈을 버는 당위성을 지키는 일
1999년, 카이스트 박사과정생이 150만원으로 사이트 하나를 열었습니다. 1년 만에 회원 500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회사는 지분을 전부 팔아넘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이러브스쿨 이야기입니다.
1999년이라는 배경
아이러브스쿨과 프리챌 둘 다 1999년 전후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 시기는 한국에 닷컴 붐이 일던 때로, 회원 수만 늘려 놓으면 투자를 받을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위성 없이도 일단 사람부터 모으라는 것이 당시에는 실제로 통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저는 이 배경이 두 회사를 변호해 주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다만 왜 당위성을 나중으로 미루는 습관이 생겼는지는 설명해 줍니다. 그 습관이 붐이 꺼진 뒤에도 남아서 문제가 됐을 뿐입니다.
인기와 생존이 갈리는 갈림길
회원 500만 명은 실패의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획이 해야 할 일의 절반은 완벽하게 해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들이 계속 쓰고 싶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아이러브스쿨이 무너진 지점은 그다음입니다. 이 트래픽을 감당하려면 투자가 필요한데, 그 투자를 불러올 수익모델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기획의 나머지 절반이 드러납니다. 사업 기획이 늘 먼저 묻는 질문, "이 사업은 왜 돈이 되는가"입니다. 화면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는 일이 기획이라면, 그 화면이 왜 돈을 벌어도 되는지 답하는 일도 기획입니다. 이 답을 사업계획서에서는 당위성이라고 부릅니다.
이야기 하나: 500만 명이 모였지만 아무도 값을 낼 이유가 없었다
아이러브스쿨의 문제는 "무엇으로 돈을 버는가"가 아예 빈칸이었다는 점입니다. 동창을 찾아 주는 서비스는 한 번 찾으면 그걸로 할 일이 끝납니다. 회원이 계속 로그인할 이유가 옅어지는 구조였고, 여기에 광고 말고는 다른 수익원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트래픽은 폭발했는데 그 트래픽을 감당할 서버 비용은 계속 나가고, 들어오는 돈은 광고 단가뿐이었던 셈입니다.
이야기 둘: 공짜로 모인 사람들에게 값을 매기자 반이 떠났다
프리챌은 반대로 수익모델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는 있었습니다. 2002년 11월, 정점이었던 1,000만 회원과 100만 개 넘는 커뮤니티를 등에 업고 유료화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순서가 거꾸로였습니다. 공짜라서 모인 사람들에게 "이제부터 돈을 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커뮤니티에 남을 이유를 회원 각자가 다시 계산하게 만든 것입니다. 대규모 이탈이 일어났고, 7개월 만에 무료로 되돌렸습니다. 이미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회사는 그 뒤로도 몇 년을 더 버티다 2010년 파산했습니다.
이야기 셋: 통했던 답이 경쟁자 앞에서 무너졌다
세이클럽은 앞의 둘과 다릅니다. 아바타 유료 아이템이라는, 국내에서 처음 통한 수익모델을 실제로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모델이 "여기 계속 사람이 많이 모여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2005년 무렵 이용자가 싸이월드와 버디버디로 옮겨가기 시작하자, 아바타를 사 줄 사람 자체가 줄었습니다. 답을 한 번 찾았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야기 넷: 자본과 스타 파워로도 타이밍은 못 샀다
Quibi는 앞의 셋과 규모가 다릅니다. 드림웍스 창업자 제프리 카젠버그와 전 HP·이베이 최고경영자 멕 휘트먼이 만들었고, 1.75조원을 투자받았습니다. 10분 이내 짧은 영상을 이동 중에 보게 한다는 컨셉으로 2020년 4월 출시했는데, 그 시점은 코로나 봉쇄로 아무도 이동하지 않던 때였습니다. 콘텐츠 전략에서도 사람들을 붙잡을 단 하나의 히트작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6개월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당위성이 무너지는 네 가지 방식
넷을 한 문장으로 묶으면 다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너지는 방식이 다릅니다.
| 서비스 | 당위성이 무너진 방식 |
|---|---|
| 아이러브스쿨 | 처음부터 답을 찾지 못했다 |
| 프리챌 | 뒤늦게 만들려던 방식(유료화)이 근거 자체를 깨뜨렸다 |
| 세이클럽 | 있던 근거의 전제(이용자 쏠림)가 경쟁 이탈로 무너졌다 |
| Quibi | 1.75조원을 쏟아붓고도 시장 타이밍을 못 메웠다 |
Quibi의 창업자 제프리 카젠버그는 폐업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our standalone business model is no longer viable
번역하면 "단독으로는 이 비즈니스 모델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자본과 스타 파워를 다 갖춘 사람이 6개월 만에 인정한 말이라는 점에서, 당위성은 돈이나 유명세로 대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인기와 당위성은 다른 지표다
넷 다 인기 지표는 훌륭했습니다. 회원 수, 커뮤니티 수, 투자금, 이 모든 숫자가 당위성이 있다는 착각을 줍니다. 저는 이 착각이 위험한 이유가 인기와 당위성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갈라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람이 모이는 동안에는 두 지표가 같이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기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쓰는가"를 재고 당위성은 "그 사용이 왜 돈으로 바뀌는가"를 잽니다. 후자를 재는 지표가 없으면, 전자가 아무리 올라도 회사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투자 대비 효용을 계산하기 전에 와야 하는 질문
투자 대비 효용을 먼저 따지는 판단은 당위성이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당위성 자체가 없으면 아무리 낮은 투입으로 아무리 큰 효용을 뽑아내도, 그 효용을 돈으로 바꿀 길이 없습니다. 아이러브스쿨은 투입은 낮았습니다. 서버 비용 말고는 큰돈이 들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뽑아낼 수 있는 효용의 크기, 그 서비스가 감당할 수 있는 수익의 최대치 자체가 작았다는 데 있습니다. 효용을 계산하기 전에 당위성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당위성을 사업계획서에 쓰는 방법
사업계획서 양식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사업의 필요성" 또는 "추진 배경"이라는 항목이 대개 맨 앞에 옵니다. 저는 이 항목에 시장 규모나 트렌드를 나열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대신 누가 얼마를 왜 내는지를 한 문장으로 답해야 합니다. "1인 가구가 늘고 있다"는 트렌드는 당위성이 아닙니다. "1인 가구가 매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미 얼마를 쓰고 있다"는 문장이라야 당위성입니다.
좋은 기획이 당위성을 대신하지 못하는 이유
네 서비스 중 화면이 조악하거나 커뮤니티 운영이 서툴러서 망한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넷 다 가장 잘나가던 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기획은 이미 성공했는데 그 성공이 무너졌다는 것은, 애초에 무너뜨린 원인이 화면이나 운영 쪽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저는 여기서 기획의 우선순위를 뒤집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보여줄지는 뒤에 와도 되는 질문입니다. 먼저 답해야 하는 것은 이 서비스가 계속 존재해도 되는 이유, 즉 돈을 벌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 답이 없으면 그 위에 아무리 좋은 화면과 카피를 쌓아도 사람이 모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무너집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화면과 카피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위성이 있어도 화면이 조악하면 사람이 애초에 모이지 않고, 당위성을 아무리 잘 세워도 그걸 고객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없으면 아무도 그 답을 듣지 못합니다. 다만 이 둘은 순서가 있습니다. 당위성이 없는데 화면부터 완벽하게 만드는 것과, 당위성을 세운 뒤 화면을 만드는 것은 실패해도 다른 방식으로 실패합니다. 전자는 사람은 모였는데 돈이 안 되는 실패이고, 후자는 돈은 될 텐데 사람이 안 모이는 실패입니다. 저는 후자가 고치기 쉬운 실패라고 봅니다. 화면은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없던 당위성은 다시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위성을 일찍 확인하는 방법
저는 당위성을 확인하는 가장 값싼 방법이 "이 서비스를 지금 당장 유료로 만들면 몇 명이 남는가"를 실제로 물어보는 것이라고 봅니다. 프리챌의 실수는 이 질문을 몇백만 명이 모인 뒤에야, 그것도 전면 유료화라는 가장 급격한 방식으로 던진 데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일부 기능만 유료로 열어 반응을 보는 편이, 나중에 전체를 유료화했다가 절반이 떠나는 것보다 훨씬 쌉니다.
당위성은 한 번 확인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세이클럽이 보여주는 교훈은 여기서 중요합니다. 당위성을 확인했다고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그 당위성이 서 있는 전제, 세이클럽의 경우 "사람들이 계속 여기 모여 있다"는 전제가 흔들리면 이미 검증됐던 당위성도 같이 흔들립니다. 저는 사업 기획이 프로젝트 초기에 한 번 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서비스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다시 물어야 하는 질문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당위성을 얼마나 일찍 확인해야 늦지 않는지에 대한 기준은 저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넷 다 그 답을 찾기 전에 사람부터 모았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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