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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본질: 돈을 버는 당위성을 지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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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랩스 대표·9분 읽기

1999년, 카이스트 박사과정생이 150만원으로 사이트 하나를 열었습니다. 1년 만에 회원 500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회사는 지분을 전부 팔아넘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이러브스쿨 이야기입니다.

1999년이라는 배경

아이러브스쿨과 프리챌 둘 다 1999년 전후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 시기는 한국에 닷컴 붐이 일던 때로, 회원 수만 늘려 놓으면 투자를 받을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위성 없이도 일단 사람부터 모으라는 것이 당시에는 실제로 통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저는 이 배경이 두 회사를 변호해 주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다만 왜 당위성을 나중으로 미루는 습관이 생겼는지는 설명해 줍니다. 그 습관이 붐이 꺼진 뒤에도 남아서 문제가 됐을 뿐입니다.

인기와 생존이 갈리는 갈림길

회원 500만 명은 실패의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획이 해야 할 일의 절반은 완벽하게 해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들이 계속 쓰고 싶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아이러브스쿨이 무너진 지점은 그다음입니다. 이 트래픽을 감당하려면 투자가 필요한데, 그 투자를 불러올 수익모델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기획의 나머지 절반이 드러납니다. 사업 기획이 늘 먼저 묻는 질문, "이 사업은 왜 돈이 되는가"입니다. 화면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는 일이 기획이라면, 그 화면이 왜 돈을 벌어도 되는지 답하는 일도 기획입니다. 이 답을 사업계획서에서는 당위성이라고 부릅니다.

이야기 하나: 500만 명이 모였지만 아무도 값을 낼 이유가 없었다

아이러브스쿨의 문제는 "무엇으로 돈을 버는가"가 아예 빈칸이었다는 점입니다. 동창을 찾아 주는 서비스는 한 번 찾으면 그걸로 할 일이 끝납니다. 회원이 계속 로그인할 이유가 옅어지는 구조였고, 여기에 광고 말고는 다른 수익원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트래픽은 폭발했는데 그 트래픽을 감당할 서버 비용은 계속 나가고, 들어오는 돈은 광고 단가뿐이었던 셈입니다.

이야기 둘: 공짜로 모인 사람들에게 값을 매기자 반이 떠났다

프리챌은 반대로 수익모델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는 있었습니다. 2002년 11월, 정점이었던 1,000만 회원과 100만 개 넘는 커뮤니티를 등에 업고 유료화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순서가 거꾸로였습니다. 공짜라서 모인 사람들에게 "이제부터 돈을 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커뮤니티에 남을 이유를 회원 각자가 다시 계산하게 만든 것입니다. 대규모 이탈이 일어났고, 7개월 만에 무료로 되돌렸습니다. 이미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회사는 그 뒤로도 몇 년을 더 버티다 2010년 파산했습니다.

이야기 셋: 통했던 답이 경쟁자 앞에서 무너졌다

세이클럽은 앞의 둘과 다릅니다. 아바타 유료 아이템이라는, 국내에서 처음 통한 수익모델을 실제로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모델이 "여기 계속 사람이 많이 모여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2005년 무렵 이용자가 싸이월드와 버디버디로 옮겨가기 시작하자, 아바타를 사 줄 사람 자체가 줄었습니다. 답을 한 번 찾았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야기 넷: 자본과 스타 파워로도 타이밍은 못 샀다

Quibi는 앞의 셋과 규모가 다릅니다. 드림웍스 창업자 제프리 카젠버그와 전 HP·이베이 최고경영자 멕 휘트먼이 만들었고, 1.75조원을 투자받았습니다. 10분 이내 짧은 영상을 이동 중에 보게 한다는 컨셉으로 2020년 4월 출시했는데, 그 시점은 코로나 봉쇄로 아무도 이동하지 않던 때였습니다. 콘텐츠 전략에서도 사람들을 붙잡을 단 하나의 히트작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6개월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당위성이 무너지는 네 가지 방식

넷을 한 문장으로 묶으면 다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너지는 방식이 다릅니다.

서비스 당위성이 무너진 방식
아이러브스쿨 처음부터 답을 찾지 못했다
프리챌 뒤늦게 만들려던 방식(유료화)이 근거 자체를 깨뜨렸다
세이클럽 있던 근거의 전제(이용자 쏠림)가 경쟁 이탈로 무너졌다
Quibi 1.75조원을 쏟아붓고도 시장 타이밍을 못 메웠다

Quibi의 창업자 제프리 카젠버그는 폐업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our standalone business model is no longer viable

번역하면 "단독으로는 이 비즈니스 모델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자본과 스타 파워를 다 갖춘 사람이 6개월 만에 인정한 말이라는 점에서, 당위성은 돈이나 유명세로 대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인기와 당위성은 다른 지표다

넷 다 인기 지표는 훌륭했습니다. 회원 수, 커뮤니티 수, 투자금, 이 모든 숫자가 당위성이 있다는 착각을 줍니다. 저는 이 착각이 위험한 이유가 인기와 당위성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갈라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람이 모이는 동안에는 두 지표가 같이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기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쓰는가"를 재고 당위성은 "그 사용이 왜 돈으로 바뀌는가"를 잽니다. 후자를 재는 지표가 없으면, 전자가 아무리 올라도 회사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투자 대비 효용을 계산하기 전에 와야 하는 질문

투자 대비 효용을 먼저 따지는 판단은 당위성이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당위성 자체가 없으면 아무리 낮은 투입으로 아무리 큰 효용을 뽑아내도, 그 효용을 돈으로 바꿀 길이 없습니다. 아이러브스쿨은 투입은 낮았습니다. 서버 비용 말고는 큰돈이 들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뽑아낼 수 있는 효용의 크기, 그 서비스가 감당할 수 있는 수익의 최대치 자체가 작았다는 데 있습니다. 효용을 계산하기 전에 당위성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당위성을 사업계획서에 쓰는 방법

사업계획서 양식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사업의 필요성" 또는 "추진 배경"이라는 항목이 대개 맨 앞에 옵니다. 저는 이 항목에 시장 규모나 트렌드를 나열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대신 누가 얼마를 왜 내는지를 한 문장으로 답해야 합니다. "1인 가구가 늘고 있다"는 트렌드는 당위성이 아닙니다. "1인 가구가 매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미 얼마를 쓰고 있다"는 문장이라야 당위성입니다.

좋은 기획이 당위성을 대신하지 못하는 이유

네 서비스 중 화면이 조악하거나 커뮤니티 운영이 서툴러서 망한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넷 다 가장 잘나가던 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기획은 이미 성공했는데 그 성공이 무너졌다는 것은, 애초에 무너뜨린 원인이 화면이나 운영 쪽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저는 여기서 기획의 우선순위를 뒤집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보여줄지는 뒤에 와도 되는 질문입니다. 먼저 답해야 하는 것은 이 서비스가 계속 존재해도 되는 이유, 즉 돈을 벌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 답이 없으면 그 위에 아무리 좋은 화면과 카피를 쌓아도 사람이 모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무너집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화면과 카피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위성이 있어도 화면이 조악하면 사람이 애초에 모이지 않고, 당위성을 아무리 잘 세워도 그걸 고객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없으면 아무도 그 답을 듣지 못합니다. 다만 이 둘은 순서가 있습니다. 당위성이 없는데 화면부터 완벽하게 만드는 것과, 당위성을 세운 뒤 화면을 만드는 것은 실패해도 다른 방식으로 실패합니다. 전자는 사람은 모였는데 돈이 안 되는 실패이고, 후자는 돈은 될 텐데 사람이 안 모이는 실패입니다. 저는 후자가 고치기 쉬운 실패라고 봅니다. 화면은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없던 당위성은 다시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위성을 일찍 확인하는 방법

저는 당위성을 확인하는 가장 값싼 방법이 "이 서비스를 지금 당장 유료로 만들면 몇 명이 남는가"를 실제로 물어보는 것이라고 봅니다. 프리챌의 실수는 이 질문을 몇백만 명이 모인 뒤에야, 그것도 전면 유료화라는 가장 급격한 방식으로 던진 데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일부 기능만 유료로 열어 반응을 보는 편이, 나중에 전체를 유료화했다가 절반이 떠나는 것보다 훨씬 쌉니다.

당위성은 한 번 확인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세이클럽이 보여주는 교훈은 여기서 중요합니다. 당위성을 확인했다고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그 당위성이 서 있는 전제, 세이클럽의 경우 "사람들이 계속 여기 모여 있다"는 전제가 흔들리면 이미 검증됐던 당위성도 같이 흔들립니다. 저는 사업 기획이 프로젝트 초기에 한 번 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서비스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다시 물어야 하는 질문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당위성을 얼마나 일찍 확인해야 늦지 않는지에 대한 기준은 저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넷 다 그 답을 찾기 전에 사람부터 모았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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